테이크 플레이스 Take Place

 

HD /  17’33” / 2009

<Take Place>는 2008~2009년간 제작된 5개의 시리즈 작품으로 공간의 정체성이 육체의 ‘활동’을 통해 등장하게 된다는 퍼포먼스 영상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된 <Take Place>는‘사건이 일어난다’라는 뜻과 ‘장소를 가지다’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장소란 몸을 통해서만 인간에게 등장하고, 그것에 대한 의미 역시 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은 도시 재건축을 위해 지금은 사라져 버린 ‘골프연습장’, ‘동대문운동장’, ‘현저동 무허가 집촌’, ‘배다리 지역’, ‘아현동 주택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영화는 마술 같은 이미지의 합성과 기존 영화에 대한 오마쥬, 사운드의 실험 등을 보여주고 있는데 재건축이란 장소에서 시작된 도시의 질문들을 결국 우리의 존재, 삶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로 풀어내고 있다.

‘Take Place’ is a series of five works produced in 2008 and 2009, a performance video work that tells how the identity of the space is made by the body’s ‘activities.’ The title has double meanings: ‘an incident takes place’ and ‘to have a place’. It tells that a place appears to human through body only and its meaning also can come possible only through the body. The places for the work are indoor field for golf practice, Dongdaemoon (East Gate) Stadium, slum town in Hyeongjeo-dong, pontoon bridge area, and Ahyeon-dong residential area that are all gone and forgotten under the name of urban redevelopment project. This film shows magical combination of images, homage to the past cinemas, and experiments with sound. The artist tries to answer the questions about the cities that started with the places of redevelopment with the fundamental thought about our being and our life.

 

“테이크 플레이스(Take Place)” HD / 17’33″ / 2009

“테이크 플레이스(Take Place)” HD / 17’33″ / 2009

“테이크 플레이스(Take Place)” HD / 17’33″ / 2009

“테이크 플레이스(Take Place)” HD / 17’33″ / 2009

“테이크 플레이스(Take Place)” HD / 17’33″ / 2009

 

 

 

 

 

 

 

 

 

 

 

 

 

 

 

 

<작업노트>

70년대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 도시개발 풍경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어제 멀쩡하게 사람이 살던 집이 오늘 사라져도 놀랍지 않고 몇 달이 채 안되어 하늘을 가려버리는 고층건물이 들어서도 ‘저것도 언제인가 없어지겠지’ 생각한다. 하지만 특별히 마음에 쓰일 때도 있다. ‘저 집에는 무슨 일이 있었고 저 장소에서 누구를 만났고’하는 사소한 경험이 있을 때다. <테이크 플레이스>의 처음은 ‘공공미술’에 대한 기획전시에서 시작되었다. ‘공공’이란 모호한 경계와 ‘미술’이라는 형식의 결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고 결국 ‘(공공의) 장소’에 대한 ‘(미적인) 경험’들을 퍼포먼스라는 형식으로 기록해 보고자 했다. 그리고 퍼포먼스(행위)라는 관점에 주목하고자 재건축으로 인해 철거된 빈 공터를 찾아다녔다.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이는 공터이지만 그곳은 어떤 장소로 의미를 가졌던 곳들이다. 그래서 나는 장소가 허물어지며 같이 사라질지도 모를 경험과 기억들을 불러오는 일들을 진행했다. 결국 나는 장소가 경험들의 축적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Take Place 

박대정(조형예술학 박사/큐레이터)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공터는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 서울’1) 을 향한 당신의 판타지에 이물감을 유발했다면 먼저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이 질문이 바로 최근 박용석이 씨름하고 있는 작업의 주제이자, 오늘 필자가 논의할 주요 대상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모든 근대화 프로젝트의 구상은 공터의 이미지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 머리 속에 백색의 도화지와 같은 빈 장소의 이미지가 없다면 어떻게 무(無)로부터 유(有)를 창조하는 건축이 가능할 수 있으며, 그것들로 가득 찬 도시의 역동적인 미래상을 꿈꿀 수 있겠는가. 따라서 공터를 문자 그대로 있으나 마나 한 땅, 또는 도심의 퇴물이자 흉물이라는 무력하게 방치된 곳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그것의 존재 가치를 너무나 쉽게 무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공터는 근대화 프로젝트를 실현하는데 있어서 기저의 역할을 하는 장소이다. 박용석이 장소에 관련한 최근 작업에서 공터를 부각시키는 이유도 그곳이 바로 근대화 프로젝트의 위상과 그 모순을 보여주는데 있어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상수(常數)와 같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공터가 그 위상을 교란, 해체시킬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을 배태하고 있는 변수(變數)의 장소이기도 하다는 점인데, 이그나시 데 솔라-모라예스(Ignasi de Solà-Morales)는 ‘테란 바그(terrain vague)’, 즉 프랑스어로 공터에 대한 어원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먼저 ‘vague’의 독일어 어원 ‘woge’는 바다의 물결, 즉 운동, 진동, 불안정성, 상하 움직임을 암시한다. 두 번째로 프랑스어의 ‘vague’는 두 가지 의미로 나뉘는데, 하나는 ‘공허하며 점유되어 있지 않은’ 혹은 ‘개방된, 이용 가능한, 선약되지 않은’ 이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불확정이고 불명료한’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모라예스는 불특정하고 불명료한 공터에서 우리가 받는 메시지의 패러독스, 즉 부재가 곧 가능성이자 자유에의 기대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를 통해 근대화가 내세우는 도구적 이성의 추상적이고 폭력적인 사용을 해체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2) 박용석은 곧 철거가 예정된 동대문운동장(1925~2008)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에서 그러한 패러독스를 포착해낸다. 한 여름 땡볕에서 축구공으로 드리블 연습에 몰두하는 남자 노인이 공터에 등장한다. 이 노인 뒤로는 서울의 여러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철거를 앞둔 동대문운동장 공터가 등장하면서 작품은 끝을 맺는다. 오늘날 이 공터에서 조선시대 장병들은 무술훈련을 하였고, 갑신정변 때 고종이 파천했으며, 아들의 친구가 쏜 총에 맞아 죽은 비운의 야구 천재 이영민(1905-1954)이 홈런을 날렸다. 그리고 해방 후 정치적 혼란기에는 군중의 단골 집회 장소이면서, 가난한 일상에 찌든 서민들의 시름을 스포츠로 달래준 장소이기도 했다. 물론 박용석은 이러한 기억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기 위한 배경으로 공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기억과 망각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이른바 바다의 물결에 비유되는 공터에다가 ‘역사’라는 세례명을 부여하여 그것을 박제화하려는 의도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통념의 전복을 노리고자(니체 역시 역사와 삶은 돌이킬 수 없는 적(敵)이라고 항변하지 않았던가) 부단히 ‘사건’을 만들어내야 하는 존재자의 움직임, 곧 신체의 문제를 작업의 전면에 내세운다. 어떤 장소(세계)에 대한 의미와 그 변용이 그곳과 관계 맺는 신체상의 움직임,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식으로 말하자면 ‘체험된 몸(lived body)’에 의해 생긴다는 것은 당연하다. 박용석의 작업은 정신이 물질(세계)에서 독립된 실체라는 근대화주의자들의 전제에 역행하는, 다시 말해 몸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사물을 향하는 ‘육화된 의식(embodied consciousness)’이라는 메를로-퐁티의 명제를 다시금 상기시킨다.3)박용석은 장소(성)를 주제로 한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장소란 몸을 통해서만 인간에게 등장하고, 그것에 대한 의미 역시 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사건이 일어난다’의 영어식 표현인 ‘take place’가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장소를 갖는다’라는 뜻에서 보다 확실하게 이해된다. 요컨대 장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세계 속에 던져진 인간, 즉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로서의 ‘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1.이것은 서울특별시 인터넷 홈페이지 www.seoul.go.kr의 첫 화면 좌측 상단에 있는 문구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2.이그나시 데 솔라-모라예스(1997). 테란 바그(Terrain Vague), 『Anyplace/장소의 논리』. 서울: 현대건축사, p. 144-145 참조. 모라예스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도시계획이라는 근대화 프로젝트의 폭력적인 현존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건축은 어떻게 해야 권력과 추상적 이성의 공격적 도구가 되지 않고 테란 바그(terrain vague)에서 활동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같은 글, p. 149.

3.이에 대한 메를로-퐁티 철학의 자세한 내용은 류의근이 번역하여 2002년에 출간된『지각의 현상학(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서울: 문학과 지성사)을 참조할 것.